장충고등학교(사진=야반도주)
장충고 황준서(좌투좌타,185cm, 75kg, 2005)
장충고 황준서(좌투좌타,185cm, 75kg, 2005)
황준서에 관해서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2022년 U-18 야구대표팀으로 시간을 되돌려 봐야 한다. 2학년으로 대표팀에 선발된 두 명의 선수(박태완-유신고) 중 한 명인 황준서는 쟁쟁한 3학년들과 함께 일찌감치 야구팬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특히 9월 1일, 강릉고 야구장에서 강릉영동대를 상대로 연습 등판한 황준서는 그 자리에 모인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던 김서현(한화 이글스)의 연습 투구가 끝나고, 그가 마운드를 내려오자, 강릉고등학교 경기장의 분위기는 잠시 산만해졌다. 김서현을 보기 위해 모였던 관중들은 흩어졌고, 황준서가 마운드에 올랐다.
'팡'
날카로운 소리에 잠시 숨을 돌리고, 각자의 얘기를 하려던 관객들은 뒤돌아 마운드를 봤다. 마른 몸의 왼손 투수가 공을 던지고 있었고, 그 연습 투구는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봐도 '좋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투구였다. 그라운드에서 멀어지던 관중들의 발길을 다시 되돌린 그 연습 투구는, 그 현장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게 만든 한 장면으로 기억한다.
146km/h입니다.
사진 2학년 때부터 주축 투수로 활약한 (왼쪽부터) 황준서, 김윤하, 조동욱, 육선엽. (사진=장충고 제공)
황준서는 최고 구속을 물어보는 질문에 머쓱하게 대답했다. 최근 들어서 아마야구의 구속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긍정적으로 봐도 좋지만, 그 관심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학년을 기준으로 140km/h를 정도의 공을 던졌다는 것은 상당히 빠른 공을 던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중학교 시절 148km/h를 던진 김서현이나, 이미 고등학교 2학년에 158km/h를 던진 장현석(마산용마고), 153km/h를 던진 김휘건(휘문고)이 있지만, 선수의 성장은 모두 다르고, 2학년에 140km/h를 던진 것은, 충분히 더 빠른 공을 던질 능력이 있다는 방증이 된다.
더불어 속도는 그것을 던질 몸이 완성됐을 때 던져야 안전하다. 마치 무협 소설이나 만화에서 사람의 신체를 '그릇'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제대로 몸을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구속에만 신경을 쓰게 되면, 불필요한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생기게 된다. 이것은 한창 성장기의 선수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그렇기에 더 나아지려는 '향상심'은 좋지만, '구속'만이 그 선수를 좋은 선수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인터뷰 내내 차분하게 대답을 잘해서, 원래 성격을 물었는데, 청소년대표 이후에 '조금 변했다'라고 말했다.
제가 평가할 실력은 아니지만, 다르더라고요.
대표팀에서 만난 전국에서 야구를 가장 잘한다는 고등학교 3학년들과의 시간, 그들과 함께 상대했던 다른 나라 선수들의 모습은, 황준서에게 '조바심'이 아닌 '준비'를 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가 경쟁해야 할 상대는, 한국의 고3만이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을 본 셈이다.
'당장 미국에 가지 않을 건데?', '지금은 고3 드래프트가 제일 중요해.', 같은 말은 현실적이지만, 내가 모르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아무렇지도 않게 '눈앞의 현실'만을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황준서는 자신이 본 쉽지 않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또 허둥대면서 급하게 뛰려고 생각하지 않고, 천천히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왼손 투수인 황준서가 던지는 146km/h의 공은, 2학년임을 고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빠른 공이다. 실제 황준서도 구속에 대해서는 당장 큰 욕심은 없다고. 그렇기에 이번 겨울의 목표는 몸을 만드는 것. 구속은 당장 고3이 아니라 프로 이후에 생각해도 충분할 거라고 느낀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저 경기 운영 능력과 타자 상대하는 방법을 더 알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한 학년 위인 윤영철(KIA 타이거즈)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자, "영광이죠."라고 빠르게 답했다. 더불어 올 시즌, 최고 왼손을 두고 손현기(전주고) 선수와 경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짓궂은 질문도 했는데, "저랑은 완전 다른 스타일인 것 같아요. 손현기 선수는 타점이 높고, 변화구 각도 날카롭죠. 그래도 제가 제구나 운영에서는 조금 앞서지 않나 싶어요. (웃음)"
가장 닮고 싶은 선수는, 투구자세가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 김광현(SSG 랜더스)을 말했고, 가장 많이 보는 영상의 투수는 조시 헤이더(샌디에이고 파드리스)라고.
야구는 인생
황준서에게 야구란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대뜸 '인생'이라는 단어를 말했다. 18살에 '인생'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빠르지 않냐고 되물었는데,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별다른 꿈이 없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살아갔을 것 같아서요."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래서 야구에 전념해야겠다는 생각을 언제 했냐고 추가 질문을 했는데, 초등학교 6학년이라는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누구라도 당연히 그 이유가 궁금했을거다. 그러나 황준서가 하는 대답을 듣고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빵점을 받았어요.
그렇게 힘들어했던 과목은 수학이었는데, 수학으로 인해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왼손 유망주가 만들어졌으니, 야구계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힘들었던 순간도 물었는데, 첫 대회였던 신세계이마트 배를 얘기했다. 황준서는 그 대회 결승전에 선발 등판했다. 3회까지는 좋은 투구를 보였다. 팀도 3:0의 리드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4회 들어서 천안북일고의 번트에 허를 찔렸다. 한 번은 번트안타였고, 그다음은 번트 타구를 잡고, 악송구했다. 그렇게 4회에만 5실점.
몇 주간 그 생각만 했어요.
그럴 만도 했다. 그만큼 중요한 경기였고, 어린 선수에게는 잊기 어려운 순간이었을 거다. 그걸 떨쳐내는 방법이 있었냐고 '우문'을 했는데, '현답'으로 돌아왔다.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는 없었어요.
황준서는 급하지 않다.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말하고, 걷고, 뛰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사인 '잘'이 붙으면, 쉽지 않아진다. 아니 어렵다. 속도를 붙여 걷는 것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몸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억지로 빠르게 걸으려고 하면, 근육통이 따라온다.
빠르게 걸을 수 있으려면, 매일의 충실함과 시간이 필요하다. 황준서는 급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걷기로 했다. 잘못 보면, 답답하게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그는 자기 상황에 맞게 자신만의 속도로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 그 목표는 드래프트라는 관문 저 너머에 있다.
아직은 겨울, 길이 미끄러울때다. 무조건 '빨리'가 아니라, 발이 내딛는 곳을 살피고, 조금 더 정확히 밟아야 할 시기다. 아직 봄은 한참 남아있다.